크레딧

영화·드라마에서 제작진의 이름을 나열하여 작품에 기여한 인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역할


 

여러 길이의 가로 막대가 세로로 길게 쌓여 크레딧 목록처럼 보이고 아래쪽 한 줄만 다른 색으로 표시된 그래픽

 

1편에서 본 크레딧 앞머리가 끝나면 이름이 갑자기 많아집니다. 촬영팀 아래 네댓 명, 조명팀 아래 예닐곱 명, 그리고 이름만 봐서는 무슨 일을 하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팀들이 줄줄이 붙습니다. 그립팀은 촬영팀과 뭐가 다른지, 동시녹음은 왜 사운드팀과 따로 적히는지. 이번 편은 비슷해 보이는 이름들을 파트로 묶어서 봅니다. 한 파트 안에서도 현장에 섰던 팀과 촬영이 끝난 뒤 붙은 팀이 갈리는데, 그 경계가 이 글의 축입니다.

 

 

 

카메라를 다루는 파트 - 촬영팀, 조명팀, 그립팀

세 팀은 카메라를 중심으로 각각 다른 것을 맡습니다. 촬영팀은 렌즈 안으로 들어오는 그림을, 조명팀은 그 그림에 닿는 빛을, 그립팀은 카메라가 놓이고 움직이는 방식을 담당합니다. 크레딧에서도 대체로 이 순서로 붙습니다.

촬영팀 안쪽은 역할이 꽤 세분돼 있습니다. 촬영감독 아래 카메라를 직접 잡는 오퍼레이터가 있고, 배우와 카메라 사이 거리를 실시간으로 맞추는 포커스 풀러가 있고, 촬영 데이터와 매체를 관리하는 자리가 따로 있습니다. 한 컷에 세 사람이 동시에 붙는 구조입니다. 카메라 대수는 현장 상황에 맞게 변합니다. 2대를 사용해서 촬영A팀, 촬영B팀이 있는 경우가 많고 드라마 현장의 경우 C캠이 붙은 경우가 다수입니다. 촬영팀과 조명팀은 세트로 붙어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합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헷갈리는 것은 그립팀입니다. 달리, 크레인, 지미집처럼 카메라를 지지하고 움직이는 장비가 그립의 영역인데, 국내에서는 이 말이 장비를 대여하는 업체를 함께 가리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크레딧에 그립팀이 회사 이름과 함께 올라오면 인력과 장비가 한 줄에 묶인 표기일 수 있습니다.

물론 경계가 나라마다 같지도 않습니다. 미국 현장에서는 빛을 가리고 확산시키는 일까지 그립이 맡고 전기 계통만 조명팀(개퍼)이 가져가는데, 국내에서는 차광을 조명팀이 함께 처리합니다. 같은 단어를 쓰는 해외 크레딧과 국내 크레딧을 나란히 놓고 읽으면 범위가 어긋납니다.

 

소리를 다루는 파트 - '동시녹음팀'과 '사운드팀'

작품의 소리를 맡는 팀은 둘로 갈립니다. 동시녹음은 촬영이 도는 동안 현장에서 대사와 공간음을 수음하는 파트이고, 크레딧에서도 현장 스태프 블록에 들어갑니다. 사운드팀은 현장 파트가 아니라 후반작업 파트입니다. 믹싱실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운드 수퍼바이저, 사운드 디자이너, 폴리 아티스트, 리레코딩 믹서는 촬영이 전부 끝난 뒤 스튜디오에서 붙는 이름들이고, 현장에 와본 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회사부터 다르기 때문에 크레딧에서도 두 덩어리가 멀찍이 떨어져 적힙니다.

그래서 소리 관련 이름을 읽을 때는 그 이름이 어느 블록에 있었는지를 먼저 봐야 합니다. 붐 오퍼레이터는 현장이고, 폴리 아티스트는 후반입니다. 같은 소리를 다루는데 작업 시점이 몇 달씩 벌어집니다.

다만 두 파트가 아주 끊겨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장에서 어떻게 녹음됐느냐가 후반에서 얼마나 손을 대야 하는지를 결정하고, 현장음이 쓸 만하면 대사 재녹음 분량이 그냥 줄어듭니다. 크레딧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작업은 한 줄로 이어집니다.

 

공간을 다루는 파트 - '미술팀'과 '세트팀'과 '소품팀'

공간을 만드는 팀입니다. 미술팀은 작품 전체의 공간을 설계합니다. 어떤 시대인지, 벽이 무슨 색인지, 인물이 어떤 집에 사는지를 정하는 쪽입니다.

세트팀은 그 설계를 실제로 짓습니다. 도면대로 벽을 세우고 바닥을 깔고 창을 내는 일이라 목공과 도장이 포함되고, 미술팀과는 인력 구성 자체가 다릅니다. 소품팀은 그 안을 채웁니다. 공간에 놓이는 물건과 배우가 손에 쥐는 물건을 나눠 관리하고, 회차가 넘어가도 같은 자리에 같은 물건이 놓이도록 맞춥니다.

의상팀은 이 셋 아래가 아니라 나란히 섭니다. 분장과 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크레딧에서 미술 블록 근처에 붙어 있어 하위 팀처럼 보이지만 지휘 계통이 다릅니다.

무게가 실리는 자리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갈립니다. 영화는 세트 비중이 크고 미술팀이 두껍게 붙는 반면, 드라마는 같은 공간을 수십 회차에 걸쳐 반복해서 쓰기 때문에 연속성 관리 쪽으로 인력이 몰립니다. 몇 달 전에 찍은 장면과 오늘 찍는 장면의 책상 위가 같아야 합니다.

다만 이 구분도 규모에 따라 흐려집니다. 예산이 작은 작품에서는 미술팀이 소품까지 함께 가져가고, 세트팀 없이 로케이션만으로 끝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미술 블록의 길이가 그 작품의 규모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영상 편집실에서 컴퓨터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를 중심으로 편집 작업 공간을 표현한 미니멀한 일러스트

현장편집 vs 편집 vs 종합편집

크레딧을 보면 '편집'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편집 관련하여 가장 먼저 나오는 명칭은 바로 현장편집입니다.

현장편집기사는 촬영 현장에서 방금 찍은 컷들을 콘티대로 이어 감독에게 보여주는 역할로, 컷이 잘 붙는지, 컷이 모자라지 않는지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현장에서 보통 감독 모니터 옆자리에 자리잡고, 크레딧에서도 연출파트에 속해있습니다. 현장편집기사가 없으면 며칠이 지나서야 편집실에서 문제가 드러나는데, 이럴 경우 현장이 정리된 이후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큰 재정적 손해가 발생합니다. 세트를 허물었을 수도 있고 배우가 다른 스케줄 때문에 헤어스타일을 바꿀 수도 있으니까요. 국내에서는 영화나 OTT시리즈에 현장편집이 붙는 경우가 많고, 주 단위로 방송분을 쳐내야 하는 드라마 현장에는 거의 없습니다. 드라마는 이미 실시간으로 편집이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흔히 말하는 '편집팀'은 현장이 아닌 편집실에서 근무하는 후반팀을 말합니다. 1편에서 본 편집보, 편집 어시스턴트, 편집지원이 전부 이 블록에 들어가는데, 쌓인 촬영분을 정리하고, 소리와 그림을 맞추고, 쓸 만한 테이크를 골라 메인 편집기사에게 전달합니다. 메인 편집감독은 정리된 소스를 보며 전체적인 스토리를 생각하고 판단을 내립니다. 그래서 편집팀은 보통 세 층으로 나뉩니다. 메인 편집기사 한 명, 그 아래 서브편집이 한두 명, 다시 그 아래 편집보가 한두 명있습니다.
종합편집은 아예 다른 영역이며 방송에만 존재합니다. 완성된 편집본, 완성된 믹싱본을 그대로 얹어 방송 규격으로 조립하는 자리라, 방송 편성작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붙고 스트리밍 오리지널에는 대체로 없습니다. 같은 편집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서 있는 공정이 다릅니다.

따라서 '이 작품의 편집감독은 누구인가?' 를 따진다면, 후반 편집팀에서 메인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마무리하며

크레딧은 이름을 하나씩 읽는 대신 파트로 묶으면 풀립니다. 카메라를 다루는 팀, 소리를 다루는 팀, 공간을 만드는 팀, 그리고 찍힌 것을 고르는 팀. 이름이 낯설어 보여도 묶이는 자리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묶고 나면 그 안에서 한 번 더 갈립니다. 동시녹음과 폴리 아티스트가 같은 소리를 다루면서 몇 달 떨어져 있고, 현장편집과 편집팀이 같은 단어를 쓰면서 서로 다른 방에 앉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두 번째 구분이 크레딧을 읽는 실질적인 요령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해 보이는 두 이름이 나오면 촬영장에 있었는지부터 물으면 대부분 갈립니다.

3편에서는 남은 파트를 봅니다. 특수효과와 시각효과, 색보정과 음악, 그리고 메이킹과 스틸과 예고편. 이번 편에서 그어둔 경계의 반대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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