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프컷 · 파인컷 · 락컷

처음 이어 붙인 편집본이 더 이상 컷을 바꾸지 않는 상태가 될 때까지 거치는 단계의 이름


짙은 녹색 바탕에 왼쪽 끝을 맞춘 가로 막대 네 개가 위에서 아래로 갈수록 짧아지고, 가장 짧은 맨 아래 막대만 주황색으로 칠해진 그림

 

러프컷, 파인컷, 락컷은 한 편의 영화가 편집실에서 거치는 단계를 순서대로 부르는 이름입니다. 마지막 단계인 락컷은 영어권 자료에서 파이널컷(final cut)으로 적는 경우가 많아서, 애플의 편집 프로그램 이름과 겹쳐 검색이 한 번 더 헷갈리기도 합니다. 이 글은 러프컷 앞에 놓이는 어셈블리에서 출발해 단계마다 무엇이 바뀌는지 따라가고, 마지막에는 락컷을 누가 확정하느냐는 최종 편집권까지 다룹니다.

 

 

 

 

모든 장면을 이어 붙인 어셈블리

촬영이 끝나면 편집실에는 장면마다 여러 테이크가 쌓여 있습니다. 어셈블리는 이 소재에서 장면별로 쓸 만한 테이크를 골라 시나리오 순서대로 전부 이어 붙인 첫 편집본입니다. 장면을 빼거나 순서를 바꾸지 않고, 그냥 각본에 적힌 대로 놓습니다. 그래서 어셈블리는 대개 완성본보다 훨씬 깁니다.

이 단계의 목적은 빠진 것이 없는지 확인하는 데 있습니다. 찍기로 한 장면이 전부 있는지, 이어 붙였을 때 이야기가 성립하는지, 다시 찍어야 할 구멍이 있는지를 여기서 봅니다.

물론 누가 어셈블리를 만드느냐는 작품마다 다릅니다. 보통은 편집감독이 먼저 붙이고 감독이 그 뒤에 합류하지만, 감독이 처음부터 직접 편집을 맡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 편집본은 바깥에 거의 보여주지 않는 내부용입니다.

 

위쪽 긴 회색 막대 안에 주황색 블록 세 개가 띄엄띄엄 놓여 있고, 아래쪽 더 짧은 줄에는 같은 블록 세 개가 순서가 바뀐 채 붙어 있으며, 얇은 선들이 서로 엇갈리며 위아래 블록을 잇는 재배열 도식
장면의 순서와 길이가 처음으로 흔들리는 단계

러프컷에서 장면이 움직이는 이유

어셈블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나면 각본으로 읽을 때는 보이지 않던 문제가 드러납니다. 같은 정보를 두 장면이 반복하거나, 관객이 궁금해하기도 전에 답이 먼저 나오는 식입니다. 러프컷(가편집)은 이 문제를 장면 단위로 고치는 편집본입니다. 장면을 통째로 빼고, 순서를 바꾸고, 한 장면을 둘로 나눠 다른 자리에 놓습니다.

그래서 러프컷의 단위는 컷보다 장면입니다. 이 단계에서 한 컷의 길이를 몇 프레임 다듬는 일은 큰 의미가 없는데, 그 장면 자체가 다음 버전에서 빠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장면 안쪽의 거친 연결은 대개 그대로 둔 채 다음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다만 러프컷이 한 번에 끝나는 단계는 아닙니다. 순서를 바꾸면 앞뒤 장면의 의미가 달라지고, 그러면 또 다른 장면이 필요 없어지거나 새로 필요해집니다. 러프컷은 대개 여러 버전을 거치고, 영화의 길이가 가장 크게 줄어드는 것도 이 반복 동안입니다. 두 시간 안팎이라는 러닝타임의 기준에 가까워지는 것도 대개 이 무렵입니다.

 

파인컷은 프레임을 다듬는 단계

장면의 순서와 개수가 정해지면 작업의 단위가 컷으로 내려옵니다. 파인컷은 각 컷이 어디서 들어오고 어디서 나가는지를 프레임 단위로 다듬는 편집본입니다. 인물이 말을 마친 뒤 얼마나 더 머물지, 리액션을 언제 넣을지, 대사를 다음 컷으로 얼마나 겹칠지가 이때 정해집니다.

이 때문에 파인컷은 장면 순서도 이야기도 그대로라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바뀐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같은 장면을 두 버전으로 이어 보면 호흡이 확연히 다른데, 한 컷에서 두세 프레임씩 덜어낸 것이 장면 전체에 쌓이면 관객이 느끼는 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책에서는 세 단계가 차례로 나오지만, 편집실에서 버전을 부를 때 이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경우는 생각보다 적습니다. 처음 내부 시사에 거는 버전을 1차 시사본이라 부르고, 그다음부터는 편집본에 날짜를 붙여 구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단계 안에서도 버전이 여러 번 바뀌기 때문에 날짜로 적어야 어느 편집본인지 정확히 가리킬 수 있습니다.

'파인'이라는 말의 쓰임도 업계마다 다릅니다. 드라마 쪽에서는 파인컷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영화 편집실에서는 같은 순간을 '락을 건다'고 말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파인컷과 락컷을 굳이 나누지 않고, 하나의 편집본이 잠기기까지 이어지는 과정으로 보는 편입니다.

 

위쪽 회색 막대가 화면 가운데를 조금 지난 곳에서 끝나고, 그 끝에서 내려온 세로선 바로 그 지점부터 아래쪽 주황색 막대가 오른쪽 끝까지 이어지는 타임라인 도식
화면이 잠긴 다음에야 소리와 색이 제자리를 찾는 순서

화면을 잠그는 락컷과 그 권한

파인컷이 더 이상 바뀌지 않게 되면 그 편집본을 락컷이라 부릅니다. 화면을 잠갔다는 뜻이고, 같은 상태를 픽처락이라고도 합니다. 락컷 이후에는 컷의 길이가 한 프레임도 바뀌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서 사운드 믹스, 색 보정, 시각효과 같은 촬영이 끝난 뒤의 후반 공정이 본격적으로 돌아갑니다. 이 시점에 컷을 다시 건드리면 그 뒤 공정을 전부 다시 맞춰야 합니다.

다만 후반팀에 편집본을 넘기는 시점은 후반 일정에 맞춰 정해집니다. 일정에 따라 파인컷 상태로 넘기기도 하고, 락을 건 뒤에 넘기기도 합니다. VFX가 중심이 되는 장면은 작업 기간이 길어서, 러프컷 단계에서 해당 장면만 먼저 넘겨 작업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락컷을 둘러싼 또 하나의 문제는 권한입니다.

누가 락컷을 확정하느냐, 즉 최종 편집권을 말합니다. 영어에서는 이 권한도 파이널컷이라고 부르는데, 미국 감독조합(DGA)의 극장용 장편 권리 요약에는 최종 편집권을 가진 사람을 계약서에 미리 적도록 되어 있습니다. 감독에게는 10주 또는 예정된 촬영일 이틀당 편집 하루 중 더 긴 기간의 감독판 편집 기간을 보장합니다. 이때의 감독판은 극장에 따로 거는 감독판과 다른 개념으로 감독이 자기 버전을 완성하는 편집 단계이고, 이 기간에는 누구도 따로 편집할 수 없습니다.

물론 감독판 기간을 보장받는 것과 최종 편집권을 갖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감독이 자기 버전을 완성해도 마지막 결정은 계약서에 적힌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럼 락컷이 나온 뒤에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냐고 물으신다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시사 반응이나 상영 조건 때문에 잠근 화면을 다시 여는 일도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러프컷, 파인컷, 락컷은 편집의 단위가 장면에서 컷으로, 컷에서 프레임으로 내려가는 순서입니다. 어셈블리에서 빠진 것을 확인하고, 러프컷에서 이야기의 구조를, 파인컷에서 호흡을 정한 뒤, 락컷에서 그 결과를 잠급니다. 락컷에 최종 편집권 문제가 따라붙는 것도, 결국 화면을 잠그는 일이 곧 영화를 확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관객이 보는 것은 락컷 하나지만, 그 안에는 어셈블리부터 이어진 선택이 전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락컷이 넘어가는 순간부터 사운드와 색을 맡은 후반팀의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저는 후반팀에 락컷을 보내는 날을 사실상 편집이 마무리되는 날로 봅니다. '락을 건다'는 말이 편집실에서 유독 무겁게 들리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대사 없는 2초


짙은 녹색 바탕에 가로 막대 두 개가 위아래로 놓여 있고, 아래 막대만 오른쪽 끝이 조금 더 길게 이어진 끝부분이 주황색으로 칠해진 그림

 

대사가 끝났는데도 화면이 넘어가지 않는 순간이 있습니다. 인물은 말이 없고 카메라도 멈춰 있지만 컷은 2초쯤 더 머뭅니다. 앞선 글에서는 편집이 대사를 끝까지 기다리지 않는 이유를 다뤘습니다. 이 글은 그 반대편, 편집이 굳이 기다리는 자리를 봅니다. 그 2초가 관객에게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어디서부터 지루함으로 넘어가는지까지 따라갑니다.

 

 

위쪽 회색 막대는 대사 트랙, 아래쪽 주황 막대는 화면 트랙을 나타내며, 두 막대는 같은 지점에서 시작하지만 화면 트랙이 대사 트랙보다 오른쪽으로 더 길게 이어지는 타임라인 도식
대사는 끝났고 화면만 조금 더 남는 자리

대사 뒤에 남겨두는 48프레임

초당 24프레임으로 상영되는 영화에서 2초는 48프레임입니다. 타임라인으로 보면 대사 트랙은 마지막 음절에서 끝나는데, 화면 트랙은 그 뒤로 48프레임을 더 달고 갑니다. 두 줄 중 한 줄이 오른쪽으로 조금 삐져나온 모양입니다. 작업 전체에서 보면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길이입니다.

그 길이가 필요한 이유는 말이 끝나는 순간과 말이 이해되는 순간 사이에 틈이 있어서입니다. 인물이 결정적인 말을 들은 직후라면 관객이 확인하고 싶은 것은 다음 장면보다 그 말을 들은 얼굴입니다. 대사가 정보를 건넸다면, 뒤에 남은 화면은 그 정보가 인물에게 어떻게 도착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리액션 컷을 따로 붙이지 않아도 같은 컷 안에서 리액션이 일어나는 셈입니다.

이 꼬리는 편집실에서 새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촬영본에 배우가 대사를 마친 뒤에도 연기를 이어간 구간이 있어야 쓸 수 있고, 현장에서 "컷" 소리가 대사 끝에 바로 나오면 남길 2초 자체가 사라집니다. 대사 뒤의 침묵은 편집의 선택이기 전에 촬영장에서 확보해둔 재료입니다. 재료가 있어야 남길지 자를지를 고민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대사 뒤에 이 틈을 두지는 않습니다. 정보만 주고받는 장면에서 말이 끝날 때마다 머물면 장면 전체가 늘어지고, 정작 중요한 침묵이 묻힙니다. 그래서 48프레임은 대개 한 장면에서 한두 번, 그 장면의 무게가 실린 대사 뒤에만 남습니다. 나머지 대사는 끝나기도 전에 다음 컷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2초 동안 관객이 하는 일

뒤에 남은 화면에는 새 정보가 없습니다. 그냥 비어 있는 시간처럼 보이지만, 관객의 머릿속은 이때 오히려 바쁘게 움직이는데, 방금 들은 말을 앞의 장면들과 맞춰보고 인물이 이제 무엇을 할지 짐작하기 때문입니다. 대사가 던진 질문을 관객이 스스로 붙잡는 시간. 이 시간을 빼면 관객은 생각할 틈 없이 다음 정보를 받아야 합니다.

배우 쪽에서 보면 이 2초는 연기가 가장 덜 가려지는 자리입니다. 대사를 하는 동안에는 말이 얼굴을 덮습니다. 말이 멈추면 눈을 내리깔거나, 숨을 한 번 고르거나,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는 작은 움직임이 비로소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촬영본에서 배우의 판단이 가장 정직하게 남는 곳이 대사가 끝난 뒤쪽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효과는 관객이 2초를 '시간'으로 느끼지 않을 때만 성립합니다. 머무는 길이가 의식되는 순간 관객은 인물 대신 연출을 보기 시작합니다. 같은 2초의 성패가 갈리는 지점이 여기에 있고, 그 갈림길은 화면 안쪽에서 정해집니다.

 

위아래 두 칸에 같은 길이의 회색 막대와 그 위의 물결선이 그려져 있고, 물결선이 평평해지는 지점에서 위 칸의 주황 구간은 끝나지만 아래 칸의 주황 구간은 그 지점을 한참 지나서까지 이어지는 비교 도식
얼굴의 움직임이 끝나는 지점이 컷을 넘기는 기준

남긴 침묵이 지루함이 되는 경계

여운과 지루함을 가르는 것은 화면 안에서 아직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느냐입니다. 인물의 얼굴이 계속 변하고 있으면 관객은 기다립니다. 변화가 끝난 뒤에도 컷이 남아 있으면 관객은 그때부터 속으로 시간을 세기 시작합니다. 관객이 영화를 지루하다고 말할 때 실제로 일어나는 일도 대개 이 구조입니다. 정보는 끝났고 화면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

그럼 몇 프레임이 적당하냐고 물으신다면, 정해진 값은 없습니다. 같은 배우의 같은 테이크라도 앞 장면이 얼마나 빨랐는지, 다음 장면이 소리로 시작하는지 조용히 시작하는지에 따라 견딜 수 있는 길이가 달라집니다.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은 프레임 숫자가 아닌데요.

얼굴이 멈추는 지점입니다.

음악이 깔려 있으면 이 경계는 조금 뒤로 밀립니다. 음악이 빈 시간을 채워주기 때문에 같은 길이도 덜 길게 느껴집니다. 반대로 음악 없이 실내 소음만 남은 장면에서는 경계가 앞당겨지고, 조금만 넘쳐도 관객이 먼저 알아챕니다. 침묵의 길이를 판단할 때 화면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자를지 남길지 정하는 기준

앞의 경계를 실제 작업에서 정하는 순서는 대개 넉넉하게 남겨두고 줄여가는 쪽입니다. 처음 붙일 때는 대사 뒤를 길게 열어두고, 장면을 앞뒤 맥락과 함께 반복해서 보면서 변화가 끝나는 지점까지 당깁니다. 한 컷만 따로 볼 때 적당했던 길이가 장면 전체로 이어 보면 길어지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을 찾을 때 프레임 카운터보다 먼저 보게 되는 것은 보는 사람의 몸입니다.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돌려 보면 대사가 끝난 직후 숨을 참게 되는 구간이 있고, 어느 순간 그 숨이 저절로 풀립니다. 저는 숨이 풀리기 직전의 프레임에서 컷을 넘기는 편입니다. 풀린 뒤에 자르면 관객은 이미 기다림을 한 번 끝낸 상태라 남은 몇 프레임을 시간으로 느끼고, 너무 일찍 자르면 참았던 숨이 갈 곳을 잃어 장면이 중간에 끊긴 인상만 남습니다.

물론 이 판단은 편집실 안에서만 끝나지 않습니다. 감독에게는 촬영장에서 그 2초를 위해 기다렸던 기억이 있고, 편집자는 처음 보는 관객의 눈으로 장면을 봐야 합니다. 같은 컷을 두고 남기자는 쪽과 줄이자는 쪽이 갈리는 일은 드물지 않습니다. 이때 대화의 근거가 되는 것도 결국 화면 안의 변화가 끝나는 지점입니다.

 

마무리하며

대사 없는 2초는 비어 있는 시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사가 건넨 정보가 관객과 인물에게 도착하는 시간입니다. 편집은 대부분의 대사를 기다리지 않기 때문에, 기다리는 한 번이 그만큼 눈에 띕니다. 그 2초를 남길지 정하는 기준도 화면 안의 얼굴에 있습니다.

처음 붙일 때 넉넉하게 열어둔 침묵은 버전이 거듭될수록 대부분 짧아집니다. 최종본까지 처음 길이 그대로 살아남는 자리는 한 장면에 몇 군데 되지 않고, 그 몇 군데는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치면서도 줄일 이유를 끝내 찾지 못한 자리입니다. 관객이 오래 기억하는 장면 상당수는 그렇게 말이 끝난 뒤를 지켜낸 장면입니다.

 

편집자가 영화를 보는 방법


두 개의 프레임이 나란히 붙어 있고 그 사이 이음매를 표시한 대표 이미지

 

영화 편집은 촬영된 화면 중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정하는 작업입니다. 이 일을 몇 년 하면 영화를 보는 방식이 조용히 바뀝니다. 이 글은 무엇이 먼저 보이는지, 그리고 그 시선이 무엇을 대신 가져가는지까지 다룹니다. 개인적으로는 직업병이라기보다 습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편집자가 하나 더 보는 관점

관객도 이야기를 보고 영화 편집자도 이야기를 봅니다. 다만 편집자는 이야기가 전달되는 통로를 하나 더 봅니다. 그 통로가 컷입니다. 무엇을 이야기하느냐와 그것이 어떤 순서와 간격으로 도착하느냐를 따로 보는 셈입니다. 상업영화 한 편에는 보통 1,000개에서 2,000개 사이의 컷이 들어갑니다. 두 시간 동안 관객은 그만큼 시점을 옮겨 다니지만, 대부분은 옮겨 다녔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합니다. 잘 만들어진 편집은 스스로를 지우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지워짐이 편집을 해본 사람에게는 잘 지워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컷이 지워졌다는 걸 아니까 그 자리가 오히려 보입니다. 같은 영화를 봐도 화면 위에 얇은 층이 하나 더 깔려 있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몰입이 강한 영화에서는 편집자도 그냥 관객이 됩니다. 오히려 그럴 때 극장을 나오면서 "어떻게 안 보였지"를 되짚게 되는데, 그 되짚음이 다음번에 보이는 것을 늘립니다.

 

관객이 보는 화면과 편집자가 보는 컷 구간을 좌우로 나눠 비교한 도식
관객은 프레임 안의 인물을 보고, 편집자는 전체 프레임을 봅니다

먼저 보이는 건 어긋난 컷

매끄러운 편집은 그냥 지나갑니다. 반대로 한 프레임만 어긋나도 시선이 거기 멈춥니다. 24분의 1초. 그 정도 단위에서 걸리는 감각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컷을 붙이는 일은 결국 두 화면 사이의 정보 차이를 관객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조절하는 작업입니다.

그 조절을 몇 년 반복하면 차이의 크기를 자동으로 재게 됩니다. 인물 위치가 반 걸음 어긋났는지, 시선 방향이 뒤집혔는지, 소리가 화면보다 두 프레임 먼저 들어왔는지. 재려고 재는 게 아니라 이미 재고 있습니다.

 

편집실에서 마주하는 화면은 대부분 아직 안 붙은 상태입니다. 완성된 장면보다 어긋난 장면을 훨씬 많이 봅니다. 같은 구간을 하루에 수십 번 다시 붙이다 보면 눈에 익는 쪽은 잘된 결과가 아니라 어긋난 상태입니다. 극장에서 완성본을 봐도 그 감각이 먼저 켜집니다.

이건 재능이 아니라 훈련의 결과에 가깝습니다. 특정 기법을 알아보게 되는 과정도 마찬가지인데, 예를 들어 점프컷이 왜 어떤 장면에서는 효과가 되고 어떤 장면에서는 사고가 되는지는 그 차이를 여러 번 본 뒤에야 구분됩니다.

 

잘려나간 자리에 남는 판단

이음매 중에서도 유독 오래 보게 되는 자리가 몇 군데 있습니다.

공통점은 전부 무언가를 뺀 자리라는 것입니다. 넣은 자리보다 뺀 자리가 판단을 더 많이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물이 말을 끝내기 전에 넘어가는 컷입니다. 대사의 마지막 음절까지 다 들려주면 문장은 완결되지만 장면은 늘어집니다. 그래서 끝을 반 박자 잘라내고 다음 화면으로 넘기는 선택을 하는데, 이때 잘라낸 0.5초가 대화의 속도를 통째로 바꿉니다. 인물이 서로의 말을 기다리지 않는 관계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냥 급한 장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감정이 올라오기 직전에 잘린 리액션 샷입니다. 배우가 표정을 다 지어 보이면 관객은 그 감정을 확인하고 거기서 끝냅니다. 반대로 감정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화면을 끊으면 나머지는 보는 사람이 채웁니다. 채운 감정은 확인한 감정보다 오래 남습니다. 편집에서 뺄셈이 덧셈보다 강해지는 대표적인 자리입니다.

 

셋째는 대사가 없는데도 남겨둔 몇 초입니다. 앞의 둘과 반대로 이건 자르지 않은 선택인데, 실은 가장 비싼 선택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2초를 지키려면 다른 어딘가에서 2초를 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2초가 살아남았다는 건 누군가 그만큼을 걸고 싸웠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세 가지가 감독의 지시보다 편집자의 서명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같은 소재를 주고 열 명이 붙이면 앞뒤 순서는 비슷하게 나오지만, 어디를 반 박자 잘랐는지는 열 개가 다 다르게 나옵니다.

 

대사 파형 끝부분을 잘라낸 컷과 끝까지 남긴 컷의 길이를 위아래로 비교한 도식
대사가 없는데도 남겨둔 몇 초

영화 편집자가 치르는 대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짐작이 가기 시작하면 감탄이 분석으로 바뀌며, 영화를 감상하며 놀라는 부분이 줄어듭니다.

한 번에 이어 찍은 것처럼 보이는 장면을 보면 어디를 이어 붙였는지 먼저 찾게 됩니다. 인물이 기둥 뒤로 지나가는 순간, 화면이 어두워지는 0.5초, 카메라가 바닥을 훑는 구간. 트릭을 알아버린 마술을 다시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알아버린 뒤에는 다시 모르는 상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대신 다른 자리에서 놀라게 되는데, 그 자리는 대개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입니다. 대사가 끝나기 전에 넘어간 컷.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2초를 더 남겨둔 자리. 그런 판단이 보이기 시작하면 영화가 다시 재미있어집니다.

바꿔 말하면 감탄의 대상이 완성품에서 선택으로 옮겨 가는 것에 가깝습니다. 손해라고 부르기에는 얻는 것도 분명한 거래입니다.

 

마무리하며

영화 편집자가 영화를 보는 방법은 특별한 능력이라기보다 초점이 하나 더 있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동시에 이야기가 조립된 흔적을 봅니다. 조립 과정을 아는 사람이 완성품을 볼 때 생기는 일이라, 요리하는 사람이 식당에서 겪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컷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한동안은 영화가 덜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그 시기를 지나면 다시 재미있어지는데요, 이때부터가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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