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타임 120분이 관습이 된 배경


가로로 놓인 긴 막대를 세로 선 하나가 끝에서 5분의 1 지점에서 가로지르고, 그 오른쪽 짧은 구간만 다른 색으로 칠해져 기준선을 넘어간 구간을 나타낸 도식

 

상업영화 러닝타임은 대체로 두 시간 안팎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시간은 관객 취향이나 감독의 미학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배급 계약서와 극장 상영시간표, 편집실 일정이 함께 만든 숫자입니다. 이 글은 120분이 실제로 어디에 적혀 있고, 극장에서 어떻게 계산되며, 편집실에서 어떤 압력으로 바뀌는지까지 따라갑니다. 저는 러닝타임 이야기가 나오면 평균보다 상한선을 먼저 떠올리는 편입니다.

 

왼쪽 끝이 맞춰진 두 개의 가로 막대 중 아래 막대가 오른쪽으로 더 길게 뻗어 있고, 그 끝을 세로 선이 표시해 평균 러닝타임과 계약상 상한의 길이 차이를 나타낸 도식

120분이 적힌 곳, 배급 계약서

전 세계 영화 전체를 놓고 보면 평균 러닝타임은 1980년대 이후 100~103분에서 크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북미 와이드 개봉작만 추려도 2000년대 초 106분 안팎에서 최근 114분으로 올라온 정도입니다. 두 시간은 평균이 아니라 그 위에 그어진 선입니다.

그 선이 문서로 남아 있는 곳이 배급 계약서입니다. 미국 공시 자료로 공개된 스튜디오 배급 계약에는 '러닝타임 90분 이상 120분 이하'를 납품 조건으로 거는 조항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타이틀을 포함하는지는 계약마다 다르지만 숫자는 같습니다. 어떤 계약은 최종 편집권을 받아본 감독에 한해 1년에 한 번 예외를 검토하겠다고 따로 적어둡니다. 예외 조건을 별도로 적었다는 것 자체가 120분이 기본값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모든 계약이 이런 조항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명시 여부는 계약마다 갈리고, 공개된 사례는 미국 배급 계약에 몰려 있습니다. 다만 국내 투자·배급사 관계자도 작품을 120분 안으로 들여오려는 분위기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적혀 있든 없든 같은 선이 작동한다는 뜻입니다.

 

같은 폭의 두 트랙 중 위쪽에는 좁은 블록 여섯 개가 빈틈없이 들어가고 아래쪽에는 넓은 블록 네 개와 절반짜리 하나가 들어가며 오른쪽에 빈 공간이 남아, 러닝타임에 따라 하루 상영 회차가 달라지는 것을 나타낸 도식
러닝타임은 총 상영회차에 영향을 줍니다

상영 회차로 환산되는 러닝타임

그 선이 왜 하필 그 자리에 그어졌는지는 극장 시간표를 보면 풀립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웹진이 인용한 롯데시네마 집계에 따르면, 192분짜리 <아바타: 물의 길>은 한 관에서 하루 평균 4.5회 상영됐습니다. 140분 영화가 통상 6회 돌아가는 것과 비교하면 회차가 4분의 1가량 줄어든 셈입니다. 회차는 곧 좌석 수이고, 좌석 수는 곧 매출입니다.

극장이 체감하는 길이는 러닝타임 숫자보다 깁니다. 멀티플렉스 상당수는 표시된 시작 시각 뒤로 광고와 예고편을 약 10분 붙이고, 앞 회차 관객이 나간 뒤 좌석을 정리하는 시간도 따로 잡습니다. 한 회차가 차지하는 시간은 러닝타임에 이 두 덩어리를 더한 값입니다.

정리 시간의 공식 기준은 공개돼 있지 않습니다. 다만 5분을 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고, 엔딩 크레딧이 끝나기도 전에 청소가 시작되기도 합니다. 틈을 줄여 회차를 확보하려는 압력이 시간표 바깥에서 그렇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계산은 계단처럼 움직입니다. 러닝타임이 조금 늘어도 회차가 유지되는 구간이 있고, 몇 분 차이로 회차 하나가 통째로 빠지는 구간이 따로 있습니다.

회차가 사라지는 경계.

그런데 정작 긴 영화가 늘 손해를 보지는 않습니다. 이벤트성 대작은 긴 러닝타임 자체가 '특별한 관람'의 신호가 되고, 극장도 높은 티켓값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씁니다. 회차 계산이 가장 무겁게 작동하는 쪽은 흥행이 불확실한 중간 규모 영화입니다. 스크린을 오래 붙잡기 어려울수록 한 회차라도 더 들어가는 길이가 절실해집니다.

 

위쪽 긴 트랙에 띄어 놓인 세 개의 블록이 아래쪽 짧은 트랙에서는 서로 붙어 배치되고, 그 사이를 잇는 선들이 여러 번 교차하며 순서까지 바뀌었음을 나타낸 도식
같은 5분을 줄여도 결과는 다릅니다

두 시간 기준이 흔들리는 두 방향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구간을 덜어내려는 흐름은 최근 한국영화에서 숫자로 드러났습니다. 2022년 여름 주요 한국 상업영화의 평균 러닝타임은 134분을 웃돌았습니다. 2024년 여름에는 <탈주> 94분, <하이재킹> 100분처럼 100분 안팎으로 내려왔습니다. 짧은 영상에 익숙해진 관객, 제작비 상승, 코미디·스릴러 중심의 장르 구성이 이유로 거론됩니다.

반대 방향의 흐름도 있습니다. OTT가 두 번째 창구가 되면서 극장판은 짧게 걸고 더 긴 감독판을 스트리밍에 따로 두는 방식이 생겼는데, <나폴레옹>이 극장판 157분과 감독판 205분으로 나뉘어 공개된 경우입니다. 같은 영화에 길이가 두 개 존재하는 셈입니다. 120분은 점점 영화 한 편의 길이라기보다 극장이라는 창구의 규격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버전이 둘이 되면 자르는 판단도 둘이 되냐고 물으신다면, 실제로 그렇습니다. 극장판에서 뺀 장면이 감독판에서 살아나는 순간 극장판의 선택은 '어쩔 수 없었던 삭제'로 읽히기 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분리가 편집자에게 꼭 반가운 소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극장판을 더 과감하게 압축할 여지가 생긴다는 시각도 충분히 성립합니다.

극장 상영이 전제되지 않는 작품은 이 기준에서 훨씬 자유롭습니다. OTT 오리지널과 극장 영화가 편집 리듬에서 갈라지는 지점도 결국 러닝타임을 누가 정하느냐에서 출발합니다.

 

마무리하며

러닝타임 120분은 배급 계약의 상한, 극장의 회차 계산, 편집실의 마감이 한 자리에 겹치면서 굳어진 관습입니다. 전체 평균은 그보다 아래에 있고, 대작은 자주 그 위로 넘어갑니다. 그래서 120분은 지켜야 하는 길이라기보다, 넘을지 말지를 매번 따져보게 만드는 기준선으로 작동합니다. 관객이 체감하는 기준점도 결국 이 선에서 나왔습니다.

120분은 영화를 관객에게 선보이려면 영화가 이 러닝타임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9월 23일 극장에 걸린 <가능한 사랑>은 164분입니다. 저는 캐릭터에 충분히 몰입하기 위해 164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빠른 호흡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죠. 결국 러닝타임은 작품에 맞춰야하는 것이며 판단 요소는 장르, 즉 영화가 가진 오락성이 될 것입니다.

 

 

<가능한 사랑>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촬영으로 얽히는 164분짜리 드라마


영화 가능한 사랑 정보의 범위를 적은 대표 이미지

 

<가능한 사랑>은 이창동 감독이 <버닝>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장편입니다. 9월 23일 극장에서 먼저 개봉했고, 11월 6일 넷플릭스로 전 세계에 공개됩니다. 러닝타임과 넷플릭스 공개일, 쿠키영상 여부를 먼저 정리하고, 164분이라는 길이가 편집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다룹니다.

 

기본정보

작품명 가능한 사랑
장르 드라마
감독 이창동
각본 이창동, 오정미
출연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 등
제작 / 플랫폼 넷플릭스
주요스탭 촬영: 김지용 / 편집: 김다원 / 음악: 정재일
공개 2026년 9월 23일 극장 개봉 / 11월 6일 넷플릭스 공개
러닝타임 164분
쿠키영상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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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든 부부와 카메라 앞에 선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계기로 만나, 서로의 삶에서 자기가 갖지 못한 것을 발견합니다.

해고 노동자 호석과 그의 아내 미옥을 설경구와 전도연이,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와 그의 남편 상우를 조여정과 조인성이 연기합니다. 이창동 감독과 설경구는 <박하사탕>과 <오아시스> 이후 24년 만에, 전도연과는 <밀양> 이후 18년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예고편

 

전체 기간을 나타내는 긴 회색 가로 막대 아래에 극장 상영 기간을 나타내는 짧은 주황색 막대가 왼쪽 중간 지점에 놓이고, 긴 막대 위에는 네 개의 가는 세로 눈금이 그어진 타임라인 도식

베니스에서 넷플릭스까지 가는 길

출발점은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데칼로그>입니다. 열 편을 각각 장편으로 다시 만드는 기획의 한 편으로 시작됐는데, 넷플릭스가 합류하면서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가 <데칼로그>의 어느 에피소드도 옮기지 않은 다른 이야기이고, 계명 하나와 닿아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완성된 영화는 9월 6일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처음 공개돼, 심사위원대상에 해당하는 은사자상과 국제비평가연맹(FIPRESCI)상을 함께 받았습니다. 앞의 상은 심사위원단이, 뒤의 상은 각국 평론가들이 뽑는 상이라 두 판단이 같은 작품에서 만난 셈입니다. 이후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이 TIFF 에버트 감독상을 받았고, 제99회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한국 출품작으로도 선정됐습니다.

물론 영화제 수상이 관람 만족도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경쟁 부문의 상은 완성도와 야심을 함께 보고 주는 것이라, 164분을 앉아 있는 경험이 즐거운지와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크레딧
에 쿠키영상은 없어도 읽을 것은 남아 있습니다. 한국의 파인하우스필름과 미국의 어나니머스 콘텐트, 나우필름이 함께 만든 한미 공동 제작이라 한국어와 영어 직책명이 섞여 올라갑니다. 어떤 직책들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위아래 두 칸으로 나뉜 도식으로, 위 칸에서는 주황색 사각 테두리가 두 개의 원을 감싸고 있고 아래 칸에서는 같은 테두리가 두 원 바깥에 떨어져 놓여 있는 비교 도형

 

164분을 채운 장면의 길이

앞서 다룬 <인턴>보다 32분이 긴 러닝타임입니다. 이런 길이의 드라마는 대개 장면 수를 늘려서가 아니라 한 장면이 머무는 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길어집니다. 이 영화의 편집은 김다원 편집감독이 맡았습니다. 참고로 김다원 편집감독은 이 작품의 현장편집기사이기도 합니다. 현장에서 감독의 요구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을 것이며, 감독 및 제작사 입장에서 이 작품을 이해하고 만들어나가기에 적합한 편집기사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가능한 사랑>은 씬 개수가 많았다기보다는, 각 컷들의 호흡이 긴 편입니다. 이창동 감독의 이전 작품을 본 관객이라면 예상 가능하듯이 감독은 느린 전개로 캐릭터에 몰입을 유도하는 연출 스타일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두 부부의 첫 만남부터 친밀감을 쌓는 시간을 관람하며 그들의 무의식을 탐험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 영화인 다큐멘터리 시점도 하나의 관람 포인트가 됩니다. 카메라에 담기는 다큐멘터리 장면은 영화 내용이 전개되는 것과 별개의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캐릭터들이 겪은 사건이 아닌, 이 사건이 각자에게 어떻게 기억되는가에 대한 내용인 것이지요. 스포일러 때문에 상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세차장의 무지개와 화단의 무지개를 비교하면 위 내용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 164분 중 덜어낼 수 있는 구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에 몰입해서 보고 싶다면 극장, 두 부부의 대사를 곱씹으며 나눠 보고 싶다면 넷플릭스 쪽이 맞습니다. 극장 상영이 남아있다면, 가장 좋은 관람 방법은 극장에서 보고 넷플릭스 공개 후 곱씹고 싶은 장면을 다시 보는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가능한 사랑>은 두 부부가 카메라 앞뒤에서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는 164분짜리 드라마입니다. 쿠키영상은 없고, 11월 6일부터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긴 러닝타임은 어떤 관객에겐 맞고 어떤 관객에게는 버거울 것입니다. 숨겨둔 의미가 많아서 다시 볼 때마다 다르게 읽힐 것 같다는 감상이 자주 보이고, 이창동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좋았다는 평도 적지 않습니다.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리던 감독인데 이번에는 그 갈림이 거의 없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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